앙리 마티스는 1869년 12월 31일, 프랑스의 르샤토캄프레시스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22세에 파리로 간 그는 법학을 공부했지만, 병환으로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습니다.
요양을 하며 건강을 회복하던 마티스에게 어머니는 물감과 그림 그리는 법이 설명된 책을 사주셨고, 마티스는 그림 그리는 것을 통해 힘든 마음을 위로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1892년 파리의 장식 미술학교에 입학하고,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배우던 그는 정형화된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고 루브르 박물관을 드나들며 작품을 모사하는 등.. 열정을 다해 미술에 매진했습니다.
이후 상징주의 운동의 선구자로 꼽히는 화가 귀스타프 모로의 눈에 띄어 그의 스튜디오에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마티스는 미술학교에서 만난 마르케와 루오등 과 교류하며 인상파의 기법과 스타일을 연구하며 색과 빛의 표현을 탐구했습니다.
또한 유명한 화상인 볼라르의 상점에서 세잔, 고흐, 고갱의 데생을 구입하기도 했고, 런던으로 가서 윌리엄 터너를 만났으며,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일본의 우키요에에 열중하기도 했습니다.
1896년부터 마티스는 색에 열중했습니다.
원색의 대비를 이용한 강렬한 표현을 시도하며, 젊은 예술가 앙드레 드랭, 블라맹크와 깊이 교류했습니다.
마티스는 1905년 여름을 앙드레 드랭과 함께 지중해의 콜리우르에서 보냈습니다. 콜리에르에서의 시간은 마티스의 창작에 큰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후 그의 그림은 사실주의적 색채에서 강렬한 보색대비로 바뀌었습니다.
콜리우르에서 돌아온 마티스는 그랑팔레에서 개최된 앙데팡당 미술전에 출품 후 드랭, 블라맹크, 마르케와 함께 합동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들의 전시를 본 비평가들은 "야수가 할퀸 것 같다"라는 평을 남겼습니다. 이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비꼬는 표현이었습니다.
마티스는 솔직한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인간의 감각을 뒤흔들 수 있는 강렬한 색을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1908년에는 강한 색채를 억제하며, 새로이 전개되고 있는 피카소의 입체주의(큐비즘)로 방향을 전환하기도 했습니다.
입체주의는 물체와 형태를 간소화하고 정형화하여 사물을 다각도로 볼 수 있도록 표현한 것으로 이 시기 마티스는 간소한 형태와 조각적 요소를 강조한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1930년대부터 마티스는 컷아웃 기법을 사용해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컷아웃은 종이를 자르고, 조합하여 작품을 만드는 방식으로 마티스의 노년기에 발전되었습니다.
40년대부터 건강상태가 악화된 마티스는 손에 붓을 쥐기조차 힘들어졌습니다.
화가로서 작품 활동이 제한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는 컷아웃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예술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위는 연필보다 감각적이다."라는 마티스의 말에는 컷아웃 작품을 조각과도 같이 느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록펠러가의 후원으로 마티스 박물관이 지어졌으나 그는 모형만을 보고 끝내 완공을 보지 못하고 84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와는 라이벌 관계이면서 좋은 영감을 주고받는 사이였습니다.
-그의 손자와 증손녀 또한 예술가라고 합니다.
-러시아의 부호 슈추킨은 마티스의 가장 큰 후원자였습니다.
-마티스는 재즈 음악 애호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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